[세계사이야기]최강의 몽골 제국 탄생과 분열









몽골제국의 탄생 및 확대와 분열

요와 금, 송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오랫동안 남북으로 나뉘었던 중국을 다시금 하나의 영역으로 만든 것은 몽골이었다. 몽골 씨족 출신의 테무진1189년경 자기 부족과 이어 몽골 여러 씨족을 통일하고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1206칭기스칸이라는 칭호를 받고 즉위하였다


이후에 칭기스칸은 국가의 재정적 기초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금나라, 서하 등 남쪽방면의 농경지역에 침입하여 말, 낙타, 재물 등을 약탈하고, 그곳의 직업적 기술자나 농민들을 잡아 유목지대로 강제 이주시켜 촌락을 이루었다. 또 유라시아 대륙을 통하는 동서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서방으로 대군을 진격시켰다


이를 토벌하여 이 지역을 병합하였다. 내 생각에는 처음 우두머리로 추대되고 난뒤 엄청난 영토를 넓힐수 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어 바로 서방세계에 대한 대원정을 시작하고, 계속하여 러시아 격파, 크림반도를 침략한 후 귀국하였다. 이후 칭기스칸은 서방원정에서 승리한 후, 그의 아들과 동생들에게 영토를 배분하였다


몽골 본토는 칭기스칸 자신의 직할지로 하였고, 넷째아들 툴루이에게 계승하기로 결정, 맏아들 주치(=조치)는 남러시아의 킵차크 초원지대를 분할하여 주었으며, 둘째아들 차가타이에게는 중앙아시아를 나누어 주었다. 또 셋째아들 오고타이(=우구데이)는 몽골고원 일대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동부 몽골고원과 중국의 북동지구 방면은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어 통치하게 하였으며, 남방의 농경지대는 그것을 그들 일족의 공유재산 으로 하고, 거기에 다루가치 와 주둔군을 배치하여 치안유지와 징세 임무를 맡게 하였다.


 

이후에 칭기칸은 다시 서하를 침략하는 도중 사망하게 된다. 칭기스칸이 죽은 후 이미 지명한 오고타이가 대칸의 자리에 즉위하였다. 그는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점령하였다


서방에 대해서는 둘째아들 바투에게 명하여 토벌하게 하였고, 태종 오고타이 칸은 오르혼강 상류지역에 수도를 구축하고, 이를 기점으로 하여 전영토로 통하는 도로를 구축하고, 역전 제도를 정비 하였다. 여기서, 역전제도란 장악한 광활한 영역을 지배하기 위해 대도를 중심으로 전국을 연결하는 것이라 한다.


벌거벗은 세계사 E21


역사상 유례없는 대제국이 건설된 것에는 이러한 제도의 힘도 크다고 본다 역전제 뿐만 아니라, 토지제도, 사회제도 또한 몽골제국이 광대한 땅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오고타이칸이 죽은 후, 그의 큰아들 구육(=귀위크, 구유크)가 대칸위에 올랐으나 3년만에 사망한다


이후에 공백상태가 발생하는데 이유는 오고타이 일가와 툴루이 일가의 대립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이 대립과 항쟁은 몽골제국을 분열시키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몽케(=뭉케)칸은 재정비 및 통일에 성공하였다. 몽케칸이 죽자, 수도 카라코룸에서 몽케칸의 부재 중 대리로 일을 맡고 있던 막내동생인 아리크부카(=아릭베케), 그의 부하와 오고타이계 제왕의 지지를 얻어 대칸위에 오르려고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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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는 남송과 일시적인 화평조치를 취하고 급히 귀환하여, 그의 신복들로 구성된 쿠릴타이의 추대를 받아 제5대 대칸위에 올랐다그후 아리크부카의 반란을 진압하고 71년 국호를 원으로 개칭하였다


한편, 쿠빌라이에게 불만을 품은 일파는 오고타이의 손자인 하이두를 칸으로 추대하여 쿠빌라이칸과 대립함으로써 이때부터 30년에 걸친 국내전이 시작되었다. 내전을 계기로 킵차크한국과 차가타이한국은 하이두의 편에 서고, 일한국은 쿠빌라이측에 가담함으로써 칭기칸이 이루어놓은 몽골제국은 분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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