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소개(Wolfgang Amadeus Mozart : 1756.1.27~1791.12.5)
오스트리아 작곡가. 잘츠부르크 출생. 18세기 고전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36년이 채 안되는 짧은 생애에 많은 명곡을 남겼다. 잘츠부르크대주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후에 부악장)이며 작곡가로서도 활동한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3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의해 천재교육을 받은 모차르트는 이미 5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할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잘츠부르크 대사교의 궁정 음악가였는데, 1762년에 그는 모짜르트를 데리고 뮌헨과 빈 등지로 연주 여행을 하여 절찬을 받았다.
다시 1763년부터 3년간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지를 돌았으며, 1767년부터 2년간은 빈으로, 1769년부터 3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3회나 연주 여행을 하였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777년엔 만하임을 거쳐 파리에서 연주여행을 했다. 그는 여행지에 따라 새 지식을 배웠고, 작곡 기법 등을 함께 습득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적인 명랑한 면과 독일적인 건강한 화성에 고전파 시대의 중심이 될 만한 기량을 갖출 수 있었다.
모짜르트는 고향에서 한 때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와 궁정악단의 악장으로 있었는데 1781년 25세 때 빈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그 곳에서 10년간 가난과 싸워 가면서 작곡하였다. 모짜르트는 그저 '천재'라든가 '위대하다'라는 따위 평범한 우리의 언어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임종의 자리에서 "죽음이란..... 모짜르트의 음악을 못 듣게 되는 것이다"라고 한 한마디가 오히려 모짜르트 음악의 진수를 날카롭게 표출 한 것 같다.
모짜르트의 스승이면서 만년에는 제자가 되기도 했던 하이든은 프라하 극장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아, 내가 모든 음악 애호가, 특히 그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짜르트의 모방할 수 없는 예술, 그 깊이, 그 정서의 위대함, 그 비길 데 없는 음악적 착상을 나 자신 느끼고 있는 그대로 설명할 수가 있다면, 이처럼 위대한 보석을 내 나라 안에 갖고 있는 국민을 온 세계가 부러워할 것이다.
이 걸출한 모짜르트가 아직 그 어떤 궁정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속이 뒤집히는 것 같습니다. 공연히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인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이든이 쾌활함과 성실을 아울러 지닌 천재이며 그의 음악이 18세기와 19세기를 뛰어넘어 오늘날에 와 닿는다면 모짜르트는 어느 세기에나 음의 예술이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감성과 정신의 자유로운 예술적 완성을 이룩한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특징
모차르트가 활동한 시대는 고전파(18세기 후반~19세기 초)시대로 그의 오페라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고전파 음악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크 음악 시대의 최후의 완성자인 바하와 헨델이 복음악으로 바로크 양식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만년에는 한편에서 이에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운동이 일고 있었다. 대중들은 복잡한 다성부 음악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간결하고 선명한 음악을 희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취향에 따라 음악은 간결하고 솔직한 선율을 택하게 되었고, 이것을 화성 적인 반주로 뒷받침하는 단순한 화성적인 단음악 즉 호모포니(Homophony)음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음악은 선율이 그 진행이나 구조에서 기능적인 화성에 뿌리를 박게 되었고, 그 구조에서도 바로크 선율과 같이 자유분방하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균형진 규칙적인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그 형식도 간결하고 솔직한 것을 좋아 하게 되었고 모든 형식이 어떤 일정한 논리성을 갖게 되었다.
고전파 음악이 시대에 남긴 커다란 업적이라고 한다면 화성음악의 확립, 소나타 형식의 확립과 발전, 기악의 확립과 발전 즉 교향곡, 근대적 협주곡, 현악 4중주, 피아노 3중주 등의 기악양식과 연주양식의 확립 등이다.
바로크시대의 사회적, 국가적 체제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적 왕권 아래 있었으나, 점차 신흥 시민 계급이 대두하면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회문화의 건설을 희망하는 계몽주의 철학의 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술분야도 과거 종교나 특정인만이 향유할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수용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이스 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져서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형식과 균형의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을 지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위법적인 음악보다는 단순 명쾌한 선율을 지닌 화성음악을 선호하였고 개성적인 감각의 성악음악보다는 기악음악이 인기가 있게 되었다. 작곡가들은 이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음악기법을 창안하는 노력이 필요하였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소나타형식(Sonata Form)이라는 형식적인 틀을 완성하게 되었다.
고전파음악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에 걸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서 완성되고, 이어서 베토벤에 의해서 한층 더 충실하게 된다. 고전파 음악의 중심에 서 있었던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35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주옥같은 명작을 많이 남겼다. 그의 음악은 고귀한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단정하고 아름다운 동심에 찬 유희와 색채,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창작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단정한 스타일, 맑은 하모니, 간결한 수법을 겸해서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멜로디는 음악의 에센스라고 할 정도로 그의 선율은 아름답고 풍부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의 음악 심연 깊숙이 한줄기 애수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독특한 유머 감각과 넘치는 창작적 기지로 시종 일관되어 있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고전주의 오페라의 최고봉에 올라서 있다. 그리고 하이든이 확립한 소나타 형식에 풍부한 색채감과 음악다운 즐거움을 부여하여 자유분방하게 작곡하였다.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음악을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작품은 41편의 교향곡을 포함하여 600여곡이 넘는데 모두 모범이 될 만한 것이며, 작곡의 중점을 오페라에 두었으나,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미사곡등 매우 광범위한 작곡활동을 하였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주로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로 징슈필, 이것은 대사와 노래가 섞여있는 독일식 뮤지컬을 말한다. 그 예로 후궁탈출, 마술피리가 있다. 둘째로, 오페라 부파*. 이것은 쉽게 코메디 오페라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 부파의 예로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여자는 다 그래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오페라 세리아, 심각한 오페라라는 뜻이다, 그 예로 이도메네오, 티토 황제의 자비 등이 있다.
* 오페라 부파 :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가 특히 가창면에서 뛰어나며, 작품도 가창 기술을 발휘한 것이많고, Bel Canto(벨 칸토)라고 하는 가창 기술이 발달했다. 초기의 베네치아 오페라에서 막간에 익살스런 내용의 짧은 연극을 넣어, Intermezzo라고 했는데, 이것이 인기를 얻어 후에 독립된 오페라가 되었으며, 이것을 오페라 부파(Opera Buffa)라고 했다. 이에 대해 비극적인 내용의 오페라를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라고 했으며, 이 두가지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 형식이 되었다.
모차르트의 주요 음악사
1791년 '레퀴엠' 작곡중 12월 5일 빈에서 사망
1791년 '피아노 협주곡 B장조', '현악 5중주곡 E플랫 장조', 가극 '마적', '황제 티 투스의 자비' 작곡
1787년 '돈 조반니' 작곡
1786년 '피가로의 결혼' 작곡
1785년 6곡의 현악 4중주를 하이든에게 헌정
1782년 아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
1782년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하프나교향곡' 작곡
1781년 잘츠부르크 주교 콜로레도와 결별 후 본격적 음악인생 시작
1780년 뮌헨궁정으로부터 의뢰받은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 작곡
1779년 궁정 오르가니스트 임명
1778년 '파리교향곡' 작곡
1775년 오페라 부파 '가짜 여정원사' 작곡
1774년 '바순 협주곡 B 장조'와 4곡의 교향곡 작곡
1772년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작품 20의 영향을 받아 6곡의 현악 4중주 작곡
1772년 오페라 세리아 '루초 실라' 초연, 대주교 취임식을 위한 축전 오페라 '시피 오네의 꿈' 작곡
1772년 궁정 콘체르트마이스터(오케스트라 리더)로 확정됨
1771년 새 오라토리오 '구원받은 베툴리아' 를 의뢰받아 작곡, 세레나타 '알바의 아스카니오' 작곡/지휘
1770년 황금박차 십자훈장 수상
1770년 밀라노 테아트르 레조 도칼 극장에서 오페라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초연
1768년 바이젠호이스 성당의 헌당식을 위해 미사곡과 다른 작품들을 작곡
1767년 첫번째 독일 오페레타 '바스티엔과 바스티엔느' 작곡
1764년 첫 작품인 바이올린 소나타 4곡 출판
1763년 서유럽 일주
1761년 5세에 미누에트와 소품들을 작곡하기 시작,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 연주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출생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