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야기]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Antonio Gaudi cornet)의 주요 건축물 2부






대표적인 건축물 - 2

3. 카사 바틀로[Casa Batllo] 1904-1906

Batllo에서 가우디는 분명히 모더니티를 표방하는 건축물들을 능가하기를 원했다. Batllo의 크기를 보면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 1901년 바르셀로나가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옛 건물을 허물어 버렸던 도시적 권위에 적응하려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이것들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는데아마도 가우디가 그러한 과거와의 급진적인 단절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주 건물의 플랫포옴을 보면자연석이 주조된 점토 조각의 인상을 풍기며 둥글게 싸여있는 표면들인 마냥 윤나고 있다.


지층과 1층 파사드의 디자인이 특이하다안뜰에는 환기 트랙이 있으며건물 아래로 내려갈수록 색조는 점점 부드러워지며서로 다른 크기의 창들이 안뜰로 떨어지는 빛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Batllo 가족이 안주하는 방들이 있는 주층으로 향하는 1층에 있는 계단의 디자인은 다음과 같다비록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벽들의 표면들은 얼핏 모자이크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가우디의 상상력이 충분히 표현되는 지붕 디자인의 두가지 예가 있다구형과 실린더 모양의 세라믹 타일들은 엇갈리며 왼쪽으로 물탱크의 용마루 장식에 사용되었다이래서 용마루는 무시무시한 용이나 공룡의 등처럼 보인다.

 

4. 카사 엘 카프리치오 [Casa El Capricho] 1883-1885

사실상 El Capricho는 Casa Vicens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두 건축물 모두 색채가 화려하고 무어식 건축을 닮아 있으며동시에 세워진 특징이 있다이 프로젝트와 함께 가우디는 스페인꽃패턴들의 타일을 건축재료로 사용함으로써 다시 동양풍 무어 양식의 인상을 얻게 되었다.



이 건축물의 주된 본당은 9개의 선택적인 벽들의 배열과 꽃으로 장식된 타일로써 매우 조용한 리듬을 창조해내어 구성되어 있다건물 입구로 들어가자마자이집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문의 시점은 거의 완전히 상대적으로 두꺼운 네개의 기둥과 미묘하게 디자인된 주두들로 차단되어 있다.

이 주두들은 세개의 다소 거칠게 보이는 둥근 아치들을 받치고 있다그때 이 포티코들로부터 탑이 솟아 있다가우디는 작은 기둥들을 디자인하여 벽들을 지지하고이것은 Casa El Capricho의 탑을 닮아 있다.

 

5. 콜레지오 테레지아노 [Colegio Teresiano] 1888-1889

절제와 엄격성은 양식의 오더에 있어서 가장 요구되는 사항이며가우디 역시 그것을 엄수하였다이리하여 입구위의 탑같이 솟아있는 발코니는 거의 가우디의 표준들에 의해금욕적인 구조로 장식되어있다.


모든 면에서 엄격함절제 그리고 검약등의 이상들을 정의함으로써 가난함이라는 오더의 이상을 새겨 넣었다비록 가우디로서는 그것을 수행함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가우디는 이 법칙을 따랐다건축물 바닥평면 전체의 형태는 미리 정해진 것이었다.: 딱딱한 사각형그려진 것 같은 건물인 것이다.



지하실의 가운데 단면은 길고좁은 복도를 포함하고 있다. ; 마침 이것 위에 1층 부분의 직사각형 내부 안뜰은 실내 방들을 빛내기 위한 빛을 제공해주고 있다.


가우디는 일련의 나란히 뻗은 아치들에 따라거의 일종의 회랑을 형성하는 중후한 복도들을 창조하였다이들 아치들은 하얗게 씻겨져 있으며안뜰로 향하여 열려 있는 아치들사이에 일정한 간격의 수많은 창들로 이루어져 있다그 결과복도는 밝으나 간접적으로 빛나고 있다빛은 평탄하게 분산되어지며 홀을 조용하면서 관조적인 분위기로 만든다동시에모든 관입하는 아치 디자인이 고딕 양식을 풍기며그리하여 일정부분은 고딕 양식을 위한 초점으로또 일정부분은 성 테레사에 의해 기초되어진 카메리트 오더로 집약된다.

 

6. 성가족 성당(Temple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1883~

그의 최대 걸작은 역시 성가족 교회. 1883년 건축이 시작된 성가족 교회는 지금도 돌을 쌓아가고 있다정확히 말하면 채석장의 돌이 바닥난 56년 이후 인조돌과 콘크리트로 쌓고 있다(다행히 가우디가 재료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성당의 3개의 정면 중 나시미엔토(탄생)는 가우디의 생전에 거의 완성이 됐고 글로리아(영광)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으며 파시온(수난)이 완성돼가는 단계에 있다.



아랫부분은 땅으로 가라앉는 듯하고 윗부분은 하늘로 솟구치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건 물은 성서에 나오는 상징들로 물결치듯 이어져있으며 각각의 면은 보는 사람에게 하나의 이야기 를 완벽하게 전달한다그리고 종탑의 끝부분은 가우디가 즐겨 사용했던 도자기 모자이크로 마감 됐다.


기능주의적인 건축물에 익숙한 우리에게 성가족 교회는 참으로 놀라운 인상을 준다사실 스페 인 안에서도 적잖은 이 비현실적인 건축물에 조소를 퍼부었던 것으로 전해진다가우디는 이 건물을 돌과 종교와 예술로 지탱해나갔는데 스스로 속죄사원이라 칭함으로써 건축을 자기희생의 과정으로 여겼다.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면서 놀라게 되는 것은 건축물 하나하나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그것은 큰 저택이나 교회건물들에만 해당되지 않는다공원의 벤치와 가로등의자 하나하나가 완전히 독 창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하고 있다그가 만든 구엘공원의 벤치는 도시 위를 물결치듯 자유롭게 흐르는 바람에서 영감을 받은 듯하며레알 광장의 가로등은 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몽환적인 조각으로 만들어져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가우디 사상의 씨줄이 종교였다면 날줄은 자연이었다그가 만들어낸 모든 형태는 자연물에서 얻어 온 것이다그는 꽃과 나무를 관찰한 뒤 건축적 형태와 완벽하게 결합시켜 가장 새로우면서도 스페인의 자연과 어울리는 예술품을 만들어냈다.

 


가우디에 대한 분석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는 환경을 중시해서 조그마한 지형이나 식물이라도 가능한 보존하려고 했으며 재활용품을 많이 사용했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자연과 함께 살아가도록 했으며생활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의 스승은 자연이다"라고 할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사람이었다그리고 그는 어느 스승에게서 사사 받은 일도 없고특정집단에서 일을 한 적도 없으며가족 중에 누구도 건축가가 없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의 건축양식 및 특정분야 로 분류하는 데는 난해한 부분이 많다그의 작품은 그 시대의 양식과 형식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 가우디 작품을 사진으로 봤을 때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건물이 반듯하지도 않고 꼭 손으로 만든 건물처럼 입면은 들쑥날쑥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알고보니 가우디의 작품에서는 기하학적인 형태에 얽매이기 보다는 자연적이며변형이 많고쉽게 인지되지 않는 곡선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따라서 가우디의 작품은 이론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형태이다가우디의 작품을 여러 건축가가 응용하여 모방하려고 했으나가우디와 같은 건축물이 완공된것은 지금까지 없는 것으로 보아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그의 상상력이 어떠했는지를 알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작품은 가우디가 말했듯이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이 베풀어 주는 매우 균형된 자연적 구조"인 것이다특히 동물의 뼈야자수곤충사람의 해골 등의 모습을 자주 사용했다그는 나무의 줄기와 해골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구조는 없다고 생각 할 정도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건축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가능성을 추구한다면 미를 잃게 될것이다또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면 미학예술 이론 또는 철학만을 깨닫게 될 것이다이렇게 추상적인 이론들은 나에게는 사치이며 관심도 없는 분야이다."

이렇듯 가우디는 건축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했다.


특별한 교육과 지식이 없어도 몸소 체험한 많은 경험들과 자신의 열정그리고 무한한 노력만으로 최고의 건축가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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