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일본인의 미의식 - 茶道를 중심으로 1부









일본인의 대표적인 7가지 미의식

1. 후류(風流)

후류는 교양 있고 세련된 인간의 우아한 취향 내지는 그러한 인간이 지니는 예술 작품 등을 지칭하는 말로서 한국어의 풍류(風流)’와 어원이 같고 뜻도 비슷하다. 원래는 좋은 행동과 작법을 의미하는 중국어로서 9세기경에 일본에 전래되었다. 처음에는 심미적인 의미로 궁정인들의 세련된 행동양식을 의미했는데, 훗날 우아한 아름다움이나 취향, 예술성이 있는 사물에 관해 사용도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뜻으로 풍아(風雅)라는 말이 있는데, 풍류(風流)쪽이 시가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에 폭 넓게 사용되고 있다. 12세기에 이르러 일본인들은 후류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하나는 대중예술에서 나타나는 보다 세속적이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풍류라고 보았고, 또 하나는 정원이나 꽃꽂이, 건축, 중국의 서경시(敍景詩)등에 나타나는 아름다움 안에서 풍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 후자의 흐름이 무로마치 시대에 다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2. 와비()

와비()는 세속적인 만사에서 해방된 한적함 안에서 정취있는 생활의 기쁨을 내세우는 일본인 특유의 미적, 윤리적 개념이다. 중세 일본의 은자(隱者)들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는데, 꾸밈없는 간소한 아름다움과 속세를 초월하려는 은둔(隱遁)과 자적(自適)의 정신을 강조한다. 다도 미학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근세 일본의 전통시가인 하이쿠(俳句)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 정신은 풍류나 사비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와비의 미의식의 양성에 힘을 기울인 것은 특히 다도의 달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센노리큐(千利休: 1522~1591)는 다도에 선()의 정신을 도입함으로써 다도의 예술성을 높이고자 했고, 청빈함 속에서 풍요로움과 간소함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대 일본 재벌 총수들의 검소한 전통은 바로 와비의 정신이 현대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3. 사비

사비는 일본의 시성이라 불리는 근세의 가인 마쓰오 바쇼와 그 문하인들의 근세시 즉, 하이카이의 시적 이념이다. 그러나 사비의 개념이나 단어 자체는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늙음이나 고독, 체념, 정적 등의 요소가 혼합된 중세 일본의 미의식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서민적이고 생동하는 근세시대 문화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다도의 미적 개념인 와비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와비 사비로 뵹깋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 미의식의 본바탕에는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인식하고 그 고독에 몸을 맡김으로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자 했던 중세 일본의 불교신자 특유의 우주관이 깔려 있었다.

 

4. 이키와 스이

이키와 스이는 에도시대의 도시의 서민계급이 지니고 있던 미적, 윤리적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키와 스이 모두 도회적이고 세련된 도시 상인들 취향의 미적 양식이다. 윤리적으로는 부자들이 돈에 집착하지 않고 성적 쾌락을 즐기지만 결코 성욕에 탐닉하지 않으며, 세속의 삶의 번잡함을 알면서도 정작 그것에 휘말리지 않는 인간의 정취 있는 삶의 방식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5. 모노노아와레

모노노아와레는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진 문학 및 미학의 이념이다. 그 중심에 자연과 인생의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깊고 애절한 이해가 존재하고 따라서 애조의 색을 내포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감탄이나 외경 때로는 기쁨을 동반하기도 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저서에 의해 문학 비평용어로 부활했다.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인간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주로 인생의 덧없음과 그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감성에 넘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일본 고전 문학 가운데 겐지모노가타리의 미적 세계도 바로 이 모노노아와레정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6. 무상(無常)

무상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모든 사물은 생겨나고 없어지며 변화함으로서 항상 움직이고 있다는 교의(敎義)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불교의 삼법인 즉, 3가지 근본적인 가르침의 하나이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사물의 변화에 민감해 무상관은 일본문학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7. 자연관(自然觀)

일본어 시젠(自然)의 어원적인 의미는 저절로 탄생되고, 전개되며 그에 의해 성립된 상태를 뜻한다. 이 말의 한자 표기인 自然은 자연 질서의 존재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존재의 여러 모습과 상황을 뜻해, 문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서양의 사상과는 달리 인간은 자연에 우월한, 자연과 대립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가족과 같이 자연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일본서기의 신화 중에서 원초의 부부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최초의 자식들은 신도 인간도 아닌 섬과 육지들이었다는 것을 보면 이러한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다.

 

위의 대표적인 7가지 미의 성격 중에서 우리는 다도 속에 담겨져 있는 와비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미의식은 어떤지 살펴보고자 한다.

 

 

다도란 무엇인가?

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은 단순히 목마름을 달래려는 생리적인 욕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즐기는 대개의 음식이 그렇듯 물을 마시는 것도 단순히 목을 축이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맛있는 음료를 추구하며 그것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을 만들어 낸 것을 어느 정도 수준의 문화를 꽃피운 모든 나라들의 습성에서 공통되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일본인들이 차를 마시는 데 기울인 관심과 그로 인해 빚어진 문화적 격식들은 보는 이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독특하다. 일본인들은 차를 마심에 있어서 단지 그 맛을 음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여 차를 마시는 순서와 차를 접대하는 방식, 다도구의 제작 양식들을 정하고 각 단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와 같이 다실을 꾸미고 다도구를 준비하여 차를 마시면서 다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전체 과정을 통틀어 다도(茶道)라 한다.

 

일본의 다도는 크게 세 가지의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다실과 다도구들의 물질적인 요소와 차를 마시는 방법에 관한 행위적인 요소, 그리고 다도에 관련된 미의식과 종교성들의 정신적인 요소가 그것이다. 즉 다도란 이런 요소들을 배워 익히며, 손님에게 접대하는 과정을 즐기는 일종의 유희 활동이자, 그런 가운데 세련된 의례로 전승된 전통 예능의 한 가지이며, 그것에 온 마음을 몰입하여 구도의 경지에까지 닿게 된 정신활동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다. 이렇듯 일본인들에게는 차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의 영역에 들어있다. 다도(茶道)를 통해 일본인의 미의식을 엿보고자 한다.

 

 

다도의 기원과 역사

일본에서는 식물로서의 차가 전래된 것보다 훨씬 이전, 헤이안시대에 견당사로서 중국에 건너 간 승려들에 의해 끽다(喫茶)의 습관이 전래되어 선종 사원에서 점차 정착해 갔다. 전교대사(傳敎大師) 최징(最澄:768822)과 홍법대사(弘法大師) 공해(空海:773835)등 유학 승려에 의해 초래된 차는 사가(嵯峨)천황을 중심으로 궁정 귀족이나 승려들에 의해 애호되다가 차차 선종을 신봉한 무가(武家)들 사이에 퍼지면서 각지에서 재배되었다. 당시의 천황은 차의 재배를 명하고 궁궐에도 차밭을 만들었으나 일부 의례와 행사에 사용됐을 뿐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차 문화는 가마쿠라(鎌倉)시대 초기 승려 에이사이(榮西)가 송()의 차 문화를 들여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까지 주로 사찰에서 약용으로 쓰였던 차는 상류층의 기호품으로 번져 나갔고, 이때에 전래된 맛차는 센차(煎茶:덖은 차)가 나오기까지 일본에서 차 문화의 본류를 이루었다.


무로마치 시대 일본 다도의 성립에 크게 이바지 한 인물은 다장(茶匠) 노아미(能阿弥)와 무라타 주코(村田珠光)이다. 무사 출신인 노아미는 차뿐만 아니라 시문, 그림, 입화, 당물(唐物) 감식에 뛰어난 기예가였고 그는 중국식의 차 문화를 차차 일본화 시키면서 다실을 서원으로 옮기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그 이후 서원 다회는 객실에서 행해지고, 차는 별실에서 달여와 손님에게 대접하게 되었다


일본 다도의 핵심을 이루는 차노유의 시조는 무라타 주코(村田珠光)인데, 그는 나라(奈良)의 승려 출신으로서 여러 곳을 유람하고 노아미를 따라 입화와 당물 감식과 선()을 배웠다. 그리고 불법(佛法)도 차노유 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어 당풍과는 다른 일본의 독특한 차노유법식을 세웠다. 주코 이래 다도가 뿌리를 내리면서 차노유를 하지 않는 자를 사람이 아니라고 (人非人) 여기게 되고, 다이묘(大名)는 물론 상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거기에 마음을 쏟았다.


주코에 이어 차문화의 확립과 번성에 크게 이바지 한 다케노 조오(武野紹鷗)는 서른 한 살에 차노유를 배우고, 가심(歌心) 즉 시의 경지를 빌려 차 문화의 궁극적인 와비를 표현하였다. 작은 다실 속에서의 마음의 수양을 중시한 다케노 죠오에 이르러 일기일회의 다도의 윤리가 생겨났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도(茶頭), 즉 차를 만들어 주는 전문가였던 센노리큐(千利休)는 스승 다케노 조오의 문하에서 시작해 와비의 미의식을 극으로 끌어올린 동시에 차모임의 형식과 절차를 만들어 다도를 완성하였다. 센노리큐는 다도가 갖는 일상성과 구도성을 극한으로까지 추구하였고 다도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정신으로, 주인과 손님 모두가 대등하고 서로 존경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정숙한 가운데 예의를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이 바로 화경청적(和儆淸寂)으로 표현되는 다도정신이며 일본 다도의 본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센노리큐의 사후, 그의 세 명의 손자와 제자들은 새로운 유파(流波)를 형성, 발전시키면서 왕실이나 귀족은 물론 신흥 도시민들에게도 다도를 널리 보급했다. 특히 이 세 명의 손자를 三千家(산센케)라 하였는데 그들은 이후 일본 다도의 중추를 형성하였다. ‘산센케는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 오모테센케(表千家), 우라센케(裏千家)등이며, 이 가운데 우라센케는 가장 많은 문하생으로 오늘날 까지도 최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문화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다도는 한동안 쇠퇴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명 정치인이나 사회인 사이에 복고적인 미술품 수집 붐과 함께 일본의 전통문화인 다도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붐은 다도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들의 맹렬한 미술품 수집열은 다도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킨 동시에 다실을 미술작품 감상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미의식을 싹트게도 했다. 다도가 근대 여성의 필수적인 교양 예법으로 자리잡게 되자, 여자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다의과(茶儀科)가 개설되어 학교 교육과정에서도 다도를 지도하게 되었다. 이렇듯 오늘날 다도의 각 유파는 정통 수장(首長)을 정점으로 수백만 명의 문하생을 거느리고 일본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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